인과관계라는 말이 있다. 흔히 사람들은 결과가 있으면 원인을 요구한다. 설명되는 것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들뢰즈가 지적한 것처럼 원인은 결과가 있기 전까지는 원인일 수 없다. 아이러니한 얘기인 것은 맞다. 결과는 원인에서 나오는 것이 단어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인은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원인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인이 원인일 수 있으려면 결과가 나오기 전에 결과를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엄밀한 과학이 아니라면 원인은 별로 믿을 것이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아이의 잘못된 행동이 있다면 항상 학교나 부모의 교육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부족한 교육이 항상 잘못된 행동을 낳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행동이 나오고 나서야 그것은 그 개인에게만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
글쓰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과연 나는 쓰는 만큼의 절반이라도 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글쓰는 나는 그냥 유체이탈 화법의 하나가 아닌지? 쓰는 만큼이라도 살자.라고 매번 생각하지만 삶 속에 녹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왜 쓰는거야? 라고 비웃어도 할 말이 없는 것 같다. 쓰는 학과에 있지만 쓰는 만큼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기대를 많이 했었지만 지금은 다들 쓰는 만큼의 절반이라도 했으면 한다. "요즘 세상은 노골적인 본심과 말뿐인 위선만이 힘을 갖는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언어와 현실을 일치시키는 것. 본심과 위선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요령이다." - 아즈마 히로키
나이 들어가는 일은 의외로 쌓아올리는 일이 아니라 점점 잘라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순간에서 선택을 할 때마다 선택하지 않은 많은 것들은 잘라낼 수 밖에 없다. 그것이 고등학교 선택이든 대학교의 학과 선택이든 그 외의 수많은 선택지든 마찬가지이다. 앞으로도 정말 많이 잘라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아직 선택하지 않았을 때가 그렇게 달콤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 길을 선택했다면 다른 길을 상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아직 선택하지 않았다면 여러 길을 상상하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달콤한 비타이 같은 일인데... 사람들이 그래서 오래 방황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길의 나를 도저히 놓아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0번으로 이 말을 인용하는 이유는 스스로 좌우명이 뭔 지 생각해봤을 때 바로 이 문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진정한 것이다. 진리다라고 믿는 것은 마음이 편하다. 더 생각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더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 표현이기도 하다. 인용문의 말처럼 진정성은 늘 자기배반적이어야 하며, 항상적 모색이어야 한다. 진정함이란 진정성을 위한 지향의 태도이지 어떤 고정된 것이 아니다. 진정성이 고정된 실체라고 믿는 순간 그건 종교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병적이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뭐 계속 고민하는 수 밖에 없다.